판금이라는 말부터 짚고 갑니다
손님들이 사고가 나면 흔히 "판금해 주세요"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판금은 쇠, 그러니까 철판을 두드리고 당겨서 펴는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아반떼에 사고가 들어와서 펜더(앞바퀴 위 쪽 철판)가 밀렸다고 하면, 저희는 그냥 손으로 대충 펴서 덮어버리지 않습니다. FM대로 견인 장비로 물어서 당겨내면서 오그라진 쇠를 제대로 펴줍니다. 이게 판금입니다. 쇠니까 가능한 일이에요.
범퍼는 쇠가 아닙니다
문제는 범퍼예요. 범퍼는 철판이 아니라 플라스틱입니다. 플라스틱은 쇠처럼 두드려서 펴지지 않아요. 그래서 범퍼는 엄밀히 말하면 판금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고로 범퍼가 부서지고 라이트가 깨지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완전히 망가져서 못 쓰게 된 것들은 교환을 하는 게 맞습니다. 억지로 붙여놓는 것보다 그게 정답일 때가 많아요. 다만 교환까지 갈 정도가 아니면 복원을 합니다. 이 복원이 바로 플라스틱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복원에는 '플라스틱 재질'이 들어갑니다
면이 우둘투둘하게 상한 부분은 퍼티라는 걸로 성형합니다. 이 퍼티가 바로 플라스틱 재질이에요. 재료를 이겨서 믹스한 뒤 바르면 굳는데, 그걸 손으로 다듬어 면을 살려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퍼티를 바르기 전에 반드시 본드라이트라는 걸 먼저 발라야 해요. 프라이머 같은 느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걸 안 바르면 당장은 멀쩡해 보여도 시간이 좀 지나면 퍼티가 통째로 떨어져 버립니다. 눈에 안 보이는 이 한 단계가 복원의 수명을 좌우해요.
재료가 싸면 결국 또 깨집니다
요즘 차들은 철판에 아연 성분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런 부위에는 아연 성분이 들어간 재료를 써줘야 접착이 제대로 됩니다. 아연 성분이 없는 싸구려 퍼티를 쓰면 나중에 떨어지고 깨지기 쉽고, 접착력도 떨어져요. 이런 재료는 솔직히 비쌉니다. 남들이 안 하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재료비 더 들고 시간 더 들고, 눈에 안 보이니까 생략해버리는 거죠. 저는 안 보이는 안쪽까지 부식방지제를 뿌려 마무리합니다. 주유구처럼 손이 안 닿는 데도 참기름처럼 쫙 퍼지게 뿌려서 부식을 막아요. 여기까지가 기본 패턴입니다.
마지막은 색을 맞추는 일
복원이 끝나면 색을 맞춥니다. 색이라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워요. 기존 색 위에 그냥 같은 색을 뿌려도 미묘하게 다르게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탕이 되는 베이스를 먼저 깔고 그 위에 본색을 올립니다. 그래야 색이 제대로 서요. 그리고 범퍼 옆 패널과 색이 안 맞는 경우엔 호주와 일본에서 쓰는 블렌딩이라는 방법을 씁니다. 페인트를 경계까지만 자연스럽게 뿌리고 광택제는 전체에 입혀서, 눈으로 봤을 때 경계가 사라지게 만드는 기술이에요. 이렇게 해야 손님이 봐도 '아, 사고 난 적 없는 차 같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정리하면, 범퍼는 판금이 아니라 플라스틱을 다루는 복원의 영역입니다. 어떤 재료를 어떤 순서로 쓰느냐가 전부예요. 손님이 이걸 아셔야 왜 제대로 된 수리에 재료비와 시간이 드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